경주배씨 분파
경주배씨유례
시조 문양공(휘 祗沱) 열전,신라개국공신 裵氏 性 하사받아
경주배씨의 득성조(得性祖)이신 시조는 신라의 모체인 6부촌장의 한분으로 금산가리촌(金山加利 ; 지금의 경주 명활산 아래 분황사 일대) 촌장이셨던 문양공(文讓公 ; 휘 裵祗沱)이시다. 지타공(祗沱公)은 신라 제23대 법흥왕(法興王) 3년(서기 516년)에 문양(文讓) 시호(諡號)를,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3년(656년)에 왕위(王位)에버금가는 장렬왕(壯烈王) 작위(爵位)를 추봉(追封) 받으셨다.公께서는 신라가 건국되기 전에, 경주 명할산에서 내려왔으며 내아촌에서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이 되었다. 금산가리촌장은 신라가 건국되기 이전에 진한(辰韓)시대에 경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6촌 가운데 하나였다.公께서는 한나라 선제 전한(前漢) 지절원년(地節元年 ; 기원전 69년)임자(壬子) 3월 어느날, 다른 5부 촌장들과 함께 자제들을 거느리고, 가의양산 기슭에서 6부 촌장들이 한데 뭉쳐 나라를 세울 것을 의논 하고 있었다.
이때 모인 촌장들은 지타공을 비롯하여, 양산촌장 알평, 고허촌장 소벌도리, 대수촌장 구례마, 진지촌장 지백호, 고야촌장 진 등이었다. 그때 멀리 있는 나정(羅井) 숲 사이로 하늘에서 한줄기 눈부신 오색 무지개 같은 전광(電光)이 쏟아지듯 내려오고, 숲 속에서 백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6부 촌장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빛줄기며, 백마의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기이하게 여기면서, 나정 쪽으로 달려가 보니,백마가 땅에 끓어앉아 절하는 시늉을 하고는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백마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붉은 알(혹은 푸른 알이라고도 함)이 하나 있었다. 6부 촌장은 커다란 알을 깨고보니, 준수한 동자(童子)가 단정한 모습으로 알속에 있는 것이었다. 하늘이 보낸 사람이라 여겨 경이롭게 생각하면서,
이 동자를 동천에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찾아와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해와 달이 청명한지라, 이 동자를 ‘밝은 누리(박혁거세 ; 朴赫居世)’라 이름을 지었다.혁거세를 13년 동안 양육하였는데,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준수 하더니 나이 열세 살이 되자 매우 영특하고 씩씩한 사람이 되었다. 이에 6부 촌장들은 다시 모여 서로 합의하여 임금으로 받들기로 하니, 이때가 한나라 오봉 원년 갑자년(기원전 57년)이며, 그가 곧 신라 태조 박혁거세이다. 국호는「서라벌」이요, 신라 천년왕국의 출발이었다. 서라벌은 서벌, 또는 사라라고도 하엿는데, 탈해왕 때에 계림(鷄林)이라고 고쳤다가, 지증왕 4년인 503년에 신라(新羅)로 정하엿다.신라 건국 4년째인 기원전 54년에 개국공신들의 위치를 정할때에 지타공을 비롯한 여섯 촌장들을 각각 ‘개국좌명 1등원훈 총재태사’ 에 봉해졌고, 제3대 유리왕 9년인 33년 봄에 6촌의 이름을 개칭하면서 촌장들에게 성을 하사 하였는데, 금산가리촌을 한지부(漢祗部)라 하고 배씨(裵氏)성을 하사하였다.지타공께서는 성을 하사받으신 후 우리 조상들은 6두품(六頭品) 귀족으로 활약하셨다.
문양공-무열공 후손 분성▪성산성주▪달성▪흥해▪곤산▪처사▪복야등 조상의 작호와 세거지로 분파
경주배씨 분파의 내력 |
우리 경주배씨( 慶州裵氏)는 시조이신 신라의 금산가리촌장 문양공(文讓公 : 휘 祗沱)과 중시조 무열공(武烈公 : 휘 玄慶)에 뿌리를 두면서도 후손들이 번창해짐에 따라 조상의 작호와 세거지 이름 등을 연유하여 분파되었다. 따라서 경주배씨의 갈래의 큰 줄기로서 분성(盆城), 성산성주(星山星州), 달성(達城), 흥해(興海), 곤산(昆山), 등5파 외에, 상계의 소목이 실전된 처사공파(處士公派), 성산 복야공파(星山 僕射公派), 화순 진사공파(和順 進士公派), 함흥 교서공파(咸興 校書公派), 협계 합문사인공파(俠溪 閤門舍人公派), 남해 감사공파(南海 監司公派) 등의 분파가 있다. 각 지파의 주요 세거지는 1945년 광복 직후까지이며, 6.25 전쟁 이후 전국 각지로 분산되었음을 밝혀 둔다. (기록에 누락 또는 오기된 문중도 있을수 있습니다.) |
분성파(盆城派) |
분성파는 중시조 무열공(武烈公 : 휘 玄慶)의 6세손인 휘 원룡(元龍)을 파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원룡은 삼중대광(三重大匡) 가락군(駕洛君 : 휘 斯革) 장남으로 고려조 때 병부상서겸도원수(兵部尙書兼都元帥)를 지내고 분성군(盆城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수관조인 원룡공을 1세로하고 분성(盆城 : 김해의 옛 지명)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온다. 분성파는 크게 분성군의 증손들인 구연공(龜淵公) 정비(廷斐), 진사공 정미(廷亹), 진사공 정현(廷顯), 판서공 수(守)의 후손들이 각각 파를 형성하여 계세하고 있다. 분성군 후손들의 주요 계파는 다음과 같다.
◆ 분성군 장증손 구연공 정비파
구연공 휘 정비(廷斐)는 분성군의 장증손이며, 평장사를 지낸 휘 단(端)의 장남이다. 호는 구연, 진사를 지냈다. 구연공의 후손은 다음 계파와 같다.
◇고성 군수공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고성군수 충장공 휘 문보(文甫)의 차남인 황(晃) 계파, 후손들의 주여 세거지는 함안, 사천, 산청, 곤명, 곤양, 남해, 덕산, 덕대, 언양, 제천 등. ◇낙원재공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낙원재공 휘 문범(文範)의 장남 육(焴) 계파, 후손들의 주요 세거지는 김해, 거제 등. ◇좌랑공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병조좌랑을 지낸 휘 특(忒)의 아들인 인(寅), 문과에 급제, 집의를 지냈다. 후손들의 주요 세거지는 김해, 밀양 등. ◇훈도공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조산대부훈도를 지낸 휘 광한(匡漢)의 장남 곤(袞) 계파, 후손들의 주요 세거지는 양산, 울산, 기장 등.◆ 분성군 차증손 진사공 정미파
진사공 휘 정미(廷亹)는 분성군의 차증손이며 평장사공 휘 단(端)의 차남이다. 그의 후손은 다음 계파와 같다.
◇이조참판공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증 좌의정 진(縉)의 장남 맹후(孟厚) 계파, 생진시에 장원급제 후 문과 급제, 이조참판을 지냈다. 주요 세거지는 창녕, 김해, 합천, 현풍, 단양, 산청, 의성, 거창, 양산, 울산, 영일, 야로, 초계, 밀양, 청도, 남원, 장수, 익산, 임실, 정읍, 강진, 군산, 강화 등. ◇성균 진사공 仲厚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진사공 중후(仲厚)의 장남, 사마시에 급제, 군위현감 재임 중에 청백리에 추앙 받은 세적(世績) 계파, 주요 세거지는 칠원, 진전, 의성, 남해창선, 양산, 합천, 창원, 강화 등. ◇성균 진사공 세집-도천 계파 : 분성군의 9세손으로 진사공 중후(仲厚)의 차남, 어모장군 용양위 부사직을 지낸 세집(世緝) 계파, 주요 세거지는 창녕, 영해, 김해 등. ◇오수 찰방공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증 좌의정 진(縉)의 3남, 사마시에 합격, 오수 찰방을 지낸 숙후(叔厚) 계파, 주요 세거지는 삼가, 합천, 선산, 고성, 남원 등. ◇선산 도호부사공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증 좌의정 진(縉)의 4남, 선산 도호부사를 지낸 계후(季厚) 계파. 주요 세거지는 창원, 청도, 밀양, 의흥, 웅동, 동래, 함안,삼가, 은진, 진안, 영산, 자인 등. ◇현감 윤상공 장증손 사관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이며 충순위공 삼근(三謹)의 장남, 진잠 현감 등을 거쳐 통정대부 행 동부승지에 이른 사관(士寬) 계파, 주요 세거지는 창녕, 청양 등. ◇현감 윤상공 차증손 담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통덕랑 인(仁)의 아들, 영덕현령으로 선정을 배푼 담(湛) 계파, 주요 세거지는 영덕, 군위, 지품, 구룡포 등.◆ 분성군 차증손 진사공 정현파
진사공 휘 정현(廷顯)은 분선군의 차증손이며 평장사공 단(端)의 3남이다. 그의 후손은 다음 계파와 같다.
◇제주 목사공 계파 : 분성군의 6세손이며 생원공 윤온(允溫)의 아들, 광주부윤을 거쳐 제주목사를 지낸 극수(克壽) 계파, 주요 세거지는 강진, 거제, 해남, 영산, 영암, 안강, 영천, 의성, 군위, 김해, 완도, 금계, 제주, 영일, 김포, 춘천, 인천, 하향 등. (
분성군의 차남 휘 종주(宗柱)의 손자이며 상호군 휘 공보(公輔)의 아들, 해주목사를 지낸 휘 수(守) 계파, 그의 후손은 다음 계파와 같다.
◇노은공 장손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이며 노은공 하(夏)의 장손이며 통훈대부 내금위판관 상무(尙武)의 아들인 일등(一仝) 계파, 주요 세거지는 산청, 함양, 부산, 하동, 김해, 사천, 거창, 장수, 남원 등. ◇노은공 차손 계파 : 분성군의 8세손으로 노은공 하(夏)의 차손이며 통훈대부 내금위판관 상무(尙武)의 아들로 무과에 급제, 구례현감을 지낸 휘 이동(二仝) 계파, 주요 세거지는 구례, 남원, 임실, 산청, 함양, 곡성 등.
성산성주파(星山星州派) |
성산성주파는 중시조 무열공(武列公)의 후손인 휘 인경(仁慶)이 고려 원종(元宗)때 흥안군(興安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을 성산성주로 하게 되었으며, 여러 파로 분파되어 번성했다.
성산성주파는 대게 휘 인경(仁慶)의 고조부인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 휘 위준(位俊)공을 1세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으나,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와 녹야당공파(綠野堂公派)는 중시조인 무열공을 1세로 하고 있다.
특히 성산파는 득관조인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휘 인경(仁慶)의 아들 휘 문적(文迪)과 무적(武迪) 형제가 크게 현달하여 성산성주파의 양맥을 이루었다. 또한 휘 인경(仁慶)의 차남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휘 무적(武迪)의 6세손인 정절공(貞節公 : 휘 克廉)은 신라 개국원훈인 시조 휘 지타(祗沱)공, 고려 개국원훈인 중시조 현경(玄慶)공의 뒤를 이어 조선 개국원훈이 되고 영의정에 올라 우리 배문이 삼한갑족이라 칭송받게 되었다. 성산성주파 후손들의 주요 계파는 다음과 같다.
◇화당공 계파 : 벽상공신(壁上功臣) 휘 위준(位俊)의 9세손이며 공조판서 진손(晋孫)의 장남으로 호가 화당(花堂)이다. 문과 급제 후 가의대부 사간원대사간 겸 지제교에 이른 규(規) 계파, 공의 후손들은 화당공 계파로 성주, 김천, 공주 및 전국에 주요 세거지를 이루어 살고 있다.
◇유산 참봉공 계파 : 벽상공신 휘 위준의 13세손이며 화당공의 현손으로 유산(酉山)에 세거한 게(垍) 계파, 공의 후손들이 유산(酉山)에 세거하여 유산파라 한다.
◇생원공 계파 : 벽상공신 휘 위준의 13세손으로 화당공의 현손이며 장사랑공 경보(景輔)의 차남, 생원시에 장원 급제한 탄(坦) 계파, 주요 세거지는 대구, 금원, 문산, 행촌 등.
◇매곡공 계파 : 벽상공신 휘 위준의 13세손으로 화당공의 현손이며 장사랑공 경보(景輔)의 3남, 퇴계 천거로 승평교수에 제수된 매곡공 숙(璹) 계파, 주요 세거지는 순천, 여천, 장태, 경산, 고령 등.
◇산음공 계파 : 벽산공신 휘 위준의 12세손으로 직강공 윤겸(允謙)의 차남으로 산음 현감을 지낸 철보(哲輔) 계파, 주요 세거지는 불로, 의령, 부산, 영동, 명천, 무주 등.
◇찰방공 계파 : 벽산공신 휘 위준의 12세손으로 직강공 윤겸(允謙)의 3남으로 현도 찰방을 지낸 선보(善輔) 계파, 세거지는 고령, 학동 등.
◇진사공 계파 : 벽산공신 휘 위준의 11세손으로 사간원 좌사간 한(閑)의 차남으로 진사를 지낸 윤순(允詢) 계파, 세거지는 금릉, 고령, 공주, 시흥 등.
◇직장공 계파 : 계파 파조인직장공 휘; 윤침은 위준공의 11세손이며 좌사간 한(閑)의 3남이다. 후손들은 청도, 무등에 세거하였다.
◇참판공 계파 : 벽산공신 휘 위준의 11세손으로 사간원 좌사간 한(閑)의 4남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된 윤언(允諺) 계파, 후손들은 송촌에 세거하였다.
◇직제학공 계파 : 벽산공신 휘 위준의 10세손으로 화당공의 차남으로 문과에 급제, 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홍문관 직제학을 지낸 윤(閏) 계파, 후손들은 삼상 등지에 세거.
◇안렴사공 계파 : 중시조 무열공의 16세손이며 공조판서 진손(晋孫)의 차남으로 정몽주와 교유하고, 최영을 도와 애구와 몽골 침략을 격퇴하는데 큰 공을세워 ‘압교 장군’ 창호와 함께 서북해도 안렴사 겸 쌍성총관에 제수된 구(矩) 계파, 주요 세거지는 영동, 심천, 용산, 보은 등.
◇진사공 현 계파 : 벽산공신 휘 위준의 9세손으로 공조판서 진손(晋孫)의 3남으로 진사에 합격하고 효제충신의 모범이 된 현(俔) 계파, 주요 세거지는 성주, 후포, 상포, 고령, 광주, 연정, 산청, 전인, 합천, 대구, 인산 등.
◇군수공 계파 : 벽산공신 휘 위준의 10세손이며 진사공 현(俔)의 차남으로 영암군수를 지낸 영성(永成) 계파, 주요 세거지는 해남, 벌교, 여천, 여수, 순천, 고흥, 하동, 구례 등.
◇녹야당공 계파 : 중시조 무열공의 16세손이며 사간원 좌사간 진후(晋后)의 아들로 사간원 대사간, 집현전 직제학 등을 지낸 유(裕) 계파, 주요 세거지는 연기, 공주, 천안, 서산, 논산 등.
◇정절공 계파 : 벽산공신 휘 위준의 11세손이며 괴당공 현보(賢輔)의 차남으로 조선 건국 1등원훈에 책록되고 첫, 영의정을 지낸 극렴(克廉) 계파, 주요 세거지는 성주, 견동, 금산, 괴산, 약목, 주문진, 강진, 완도, 해남, 음성 등.
◇미은공 계파 : 벽산공신 휘 위준의 11세손이며 소윤공 희보(希輔)의 장남으로 교려조에서 무과에 급제, 도총제에 이르렀으나 조선 개국 후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극명(克明) 계파, 특히 미은공의 9세손인 판당공 무범(武範)의 후손들은 판당공파를 이루어 세거하였다. 주요 세거지는 성주, 칠곡, 왜관, 고령 등.
달성파(達城派) |
달성파는 중시조인 무열공(武烈公)의 6세손이며 삼중대광(三重大匡) 가락군(駕洛君) 휘 사혁(斯革)의 3남인 고려평장사(高麗平章事) 휘 운룡(雲龍)이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을 달성으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특히 달성파는 달성군의 8세손인 밀직부사(密直副使) 정지(廷芝)의 후손들이 크게 여러 파로 나누어졌다. 밀직부사공의 장남 통판공(通判公) 성경(成慶)의 후손들은 회은공파(晦隱公派), 고부군파(古阜君派), 판서공파(判書公派), 청정공파(淸靖公派)로 분파되었다. 달성군 후손들의 주요 계파는 다음과 같다.
◇회은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1세손이며 광유(光裕)의 장남으로 문과에 급제, 보문각 직제학에 오른 회은(晦隱) 문우(文祐) 계파. 주요 세거지는 화순, 능주, 장흥, 무안, 정읍, 승주, 창녕, 영암, 경산, 고성, 영광 등. ◇고부군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2세손이며 직제학 문우(文祐)의 차남으로 고부군(古阜君)에 봉해진 인경(仁慶) 계파. 주요 세거지는 고성, 진주, 구례. 사천, 창원, 진잠, 수곡, 동해 등. ◇병조판서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1세손이며 광유(光裕)의 차남으로 홍건적과 싸우다가 장렬한 전사를 하여 병조판서로 증직된 균(均) 계파. 주요 세거지는 나주, 무안, 전주, 영암, 곡성, 목포 등. ◇청정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1세손이며 광유(光裕)의 3남으로 성리학과 예학에 정통하며 봉익대부 예부상서를 지내고 청정(淸靖) 시호를 받은 을서(乙瑞) 계파. 주요 세거지는 나주, 광산, 고창, 진도, 화순, 관사, 무안, 강진, 신안 등. ◇병판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1세손이며 금자광록대부통관 광경(光褧)의 장남으로 길재의 천거에도 벼슬을 사양, 세종대왕이 병조판서를 추증한 경덕(敬德) 계파. 주요 세거지는 경산, 경주, 대구, 칠곡, 진량, 영광, 영동, 하양 등. ◇직제학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1세손이며 대구부윤 광달(光達)의 차남으로 문과에 급제,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을보(乙輔) 계파. 주요 세거지는 은진 등. ◇문하사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0세손이며 검교장군 함경(咸慶)의 장남으로 문하사(文下事)를 지낸 광덕(光德) 계파. 주요 세거지는 대구, 광산 등. ◇판도판서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0세손이며 검교장군 함경(咸慶)의 차남으로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낸 광혁(光赫) 계파. 주요 세거지는 칠곡, 광주 등. ◇진사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0세손이며 검교장군 함경(咸慶)의 3남으로 진사에 오른 광완(光浣) 계파, 주요 세거지는 전주, 김제 등. ◇중랑장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0세손이며 검교장군 함경(咸慶)의 4남으로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광전(光佺) 계파. 주요 세거지는 광주, 광산 등. ◇숭록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10세손이며 검교장군 함경(咸慶)의 5남으로 대광보국 승록대부를 지낸 광필(光弼) 계파. 주요 세거지는 평양, 대덕 등. ◇도원수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8세손이며 민부전서 영(瑩)의 차남으로 형밀직공 정지(廷芝)에 이;어 도원수를 지낸 정란(廷蘭) 계파. 주요 세거지는 대구 등. ◇만헌공 계파 : 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의 후손 중에 호남으로 이주 하여 도봉대부 동몽교관을 지낸 만헌(晩軒) 휘 윤우(潤祐)를 기세조로 한 계파. 주요 세거지는 무안, 목포, 일로, 서울, 광주, 나주, 삼향 등.
흥해파(興海派) |
흥해파는 중시조 무열공(武烈公)의 후손인 휘 전(詮 또는 佺)이 고려 충혜왕조(忠惠王朝)에 삼중대광도첨의평리(三重大匡都僉議評理)에 올랐고 흥해군(興海君)에 봉해짐으로 해서 후손들이 흥해(興海)를 관향으로 삼고 공의 5대조인 검교장군(檢校將軍) 휘 경분(景分)을 1세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흥해군 후손들의 주요 계파는 다음과 같다.
◇직제학공 계파 : 검교장군(檢校將軍) 휘 경분(景分)의 7세손이며 익대좌명 1등공신 흥해군 휘 전(詮)의 장남으로 고려에서 문과에 급제, 중헌대부 보문각 직제학을 지낸 휘 상도(尙度) 계파, 특히 공의 증손 형(亨)의 후손들이 안악(安岳)파를 이루었다. 주요 세거지는 안악, 신천, 흥해 등. ◇백죽당공 계파 : 검교장군(檢校將軍) 휘 경분(景分)의 7세손이며 흥해군의 3남으로 통훈대부 판사 복시사에 올랐으며 조선이 건국되자 안동에 정착,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백죽당 상지(尙志) 계파, 주요 세거지는 도목, 녹동, 태동, 영일, 의창, 파주, 사의, 호평, 금계 등. ◇지평공 계파 : 검교장군(檢校將軍) 휘 경분(景分)의 8세손이며 백죽당의 장남으로 봉화현감,사헌부지펑 등을 지낸 휘 권(權) 계파, 공의 3남 효성(孝誠) 후손들이 경성(鏡城)파를 아루었다. 주요 세거지는 안동, 대구, 영주, 내성 등. ◇관찰사공 계파 : 검교장군(檢校將軍) 휘 경분(景分)의 8세손이며 백죽당의 차남으로 문과에 급제, 예문관 직제학, 황해 충청 전라 3도 관찰사를 지낸 휘 환(桓) 계파, 공의 차남 효존(孝存) 후손들이 녹사공파, 3남 효승 후손들이 승지공파, 4남 효건 후손들이 옥과공파, 5남 효사 후손들이 언양공파를 이루었다. 주요 세거지는 안동, 풍산, 정선, 강릉, 영주 등. ◇감찰공 계파 : 검교장군(檢校將軍) 휘 경분(景分)의 8세손이며 백죽당의 3남으로 문과에 급제,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 이조정랑을 지낸 휘 남(楠) 계파, 공의 장남 효로(孝老) 후손들이 남송파, 차남 효눌 후손들이 천동파를 이루었다. 주요 세거지는 안동, 의성 등. ◇정랑공 계파 : 검교장군(檢校將軍) 휘 경분(景分)의 8세손이며 백죽당의 4남으로 문과에 급제, 통훈대부 이조정랑을 지낸 휘 강(杠) 계파, 공의 장남 승원 후손들이 독양파를 이루었다. 주요 세거지는 예천.
곤산파(昆山派) |
곤산파는 달성파의 파조인 달성군(達城君 : 휘 雲龍)의 14세손인 휘 맹달(孟達)이 곤산군(昆山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휘 맹달을 파조로 하고 달성에서 분적하여 곤산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온다.
곤산군의 자(字)는 달지(達之) 호는 죽헌(竹軒), 시호는 양호(襄胡)로 증좌찬성(證左贊成) 후(厚)의 장남이다. 공은 병법이 뛰어났으며 세종조에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지냈다. 1453년(단종 1년)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정난원종공신(靖難原種功臣)에 녹권 되엇고, 상서승(尙書丞), 부호군(副護軍), 호군겸부장(護軍兼部將), 창성부사(昌城府使), 상호군(上護軍), 안주목사(安州牧使),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등을 지냈으며 1497년(연산 3년) 정헌대부병조판서(正憲大夫兵曹判書)에 이르렀다.
공은 장남 진주병마절도사(晋州兵馬節度使), 차남 양지현감(陽智縣監) 사종(嗣宗), 3남 사고랑(史庫郞) 사민(嗣敏), 4남 병조판서(兵曹判書) 천도(天道) 등 4남을 두었다.
숙흥공의 장남 치인(致仁) 후손들이 남양, 서울, 영일, 차남 치의(致義) 후손듫이 아산, 철원, 3남 치레(致禮) 후손들이 용인, 달성, 부안, 4남 치지(致知) 후손들이 평양, 김포 등지에 세거지를 이루었고, 숙흥공의 차남 사종(嗣宗)의 후손들이 청주, 3남 사민(嗣敏)의 후손들이 충주, 북청 지역에 세거지를 이루어 살고 있다.
경주 처사공파(慶州處士公派) |
경주 처사공파는 중시조 무열공(武烈公) 이하의 계대소목이 실전되어 조선 성종조(成宗朝)때 휘 충과(忠果)공을 1세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충과공의 자(字)는 사문(士文)으로 일찍이 학문이 깊고 의술에 능하였다. 빈민을 구제하고 생명을 구하는데 힘써서 중종조(中宗朝)에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에 제수되었으며 경주처사(慶州處士)의 호가 내려졌다. 공의 묘소는 경주시 충효동에 있다. 공의 5세손인 동부녹사공(東部錄事公) 기인(起仁), 공의 5세손인 건원릉참봉공(健元陵參奉公) 한손(漢孫), 공의 5세손인 이조정랑공(吏曹正郞公) 사손(師孫), 공의 5세손인 사헌부지평공(司憲府持平公) 소흥(紹興)의 후손들은 경주, 광주(廣州), 포천, 여주, 화성, 평택 등지로 산거하였다.
성산복야공파(僕射公派) |
복야공파는 시조 문양공(文讓公)의 후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에 재상을 역임한 중대광(重大匡) 상서성(尙書省) 좌복야공(左僕射公 : 휘 英贊)을 파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복야공의 아들 중휴공(仲休公)은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손자 길상(吉祥)은 영동정(令同正)을, 증손 혜(惠)는 북청도호부사 겸 병마사절사를, 5세손 서문(瑞文), 익문(翊文) 모두 상호군(上護軍)을, 6세손 유(裕)는 군자감직장을 지냈다. 8세손 안촌공(安村公) 응경(應褧)은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순천 나주 목사, 대구 부사, 예조참판, 양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원종일등공신 문집간행, 향봉계서원(享鳳溪書院)을, 9세손인 월촌공(月村公) 상(詳)은 선무이등공신 수군절도, 월헌공(月軒公) 인지(紉芷)는 원종3등공신 군사감직장을, 치암공(癡巖公) 상익(尙益)은 전라도사(都事)에 이어 황해도사, 10세손인 유암공(楡巖公) 유장(幼章)은 숭정처사 문집간행, 유화(幼華)는 팔사의금부 도사 종부사주부 등을 역임하였다.
<기타 파>
남해감사공파(南海監司公派) |
중시조 무열공 이후로 계대가 실전되어 가계대가 실전되어 가선대부 개성유수를 지내고 부안에 정착한 휘 순(循)을 파조로 삼고 남해를 관향으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남해 감사공파는 500여년을 넘게 전북 부안지역에 정착하였으며. 휘 순(循)의 손자 수의(守義)와 종의(宗義) 형제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창의하여 위훈을 세우는 등 자랑스러운 가풍을 지키며 살아왔다.
화순진사공파(和順進士公派) |
중시조 무열공 이후로 계대가 실전되어 고려조에서 국자감 진사를 지낸 휘 연순(練循)을 파조로 삼고 세계를 잇고 있다.관향은 본래 백제의 잉리아현(仍利阿縣)이었던 화순(和順)으로 삼고 있다.
함흥교서공파(咸興校書公派) |
중시조 무열공 이후로 계대가 실전되어 문헌으로 고증할 자료가 없어 정확한 계대를 알 수 없다. 조선조에 교서관(校書館) 박사를 지낸 휘 덕수(德秀)를 파조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관향은 함남 함흥으로 삼고 있다.
협계합문사인공파(俠溪閤門舍人公派) |
중시조 무열공 이후로 계대가 실전되어 고려조에서 합문사인을 지낸 휘 진(縉)을 파조로 삼고 세계를 잇고 있다.
※ 慶 州 裵 氏 宗 報 제공 2012.10.1
대전 뿌리공원
대전 중구에 있는 뿌리공원은 공원안에 성씨별조형물.족보박물관이 있으며
주위에 효문화마을,대전 오월드, 보문산등이 있습니다
성씨유래 뿌리공원 입구
성씨별 족보 박물관
뿌리공원 가는 다리
이 계곡 다리를 건너가야 뿌리공원
뿌리공원 건너가는 다리밑 계곡
뿌리공원 조감도
뿌리공원 內
뿌리공원 상징탑은 배문의 기상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하여 경로효친사상을 함양시키고 한겨례의 자손임을 일깨우기 위하여 성씨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운 충효의 산 교육장으로 대전 뿌리 공원이 있다
우리 배문의 상징탑은 뿌리공원 81번 위치에 2008년 10월에 건립하였다. 상징탑의 조성 경위를 보면 배수관 종친(조각가)이 설계 조각하고 조형물의 재료는 화강석(포천석+고흥석+오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내용으로 경주배씨는 신라, 고려, 조선 3조의 개국공신들을 배출한 유일한 씨족으로 ‘삼한갑족(三韓甲族)’ 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 씨족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명예로운 전통을 지닌 경주배씨의 빛나는 위업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 세상에 밝은 빛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구상 하였다.
3개의 기둥은 각각 신라. 고려, 조선을 상징하고, 그 중심의 ‘裵’자 형상이 이 세 기둥과 연결되어 있는 조합이다. 삼한갑족의 긍지를 바탕으로 조국의 번영된 미래와 경주배씨의 무한한 번영을 기원하고 있다. 재료는 다양의 색상의 화강석을 사용하여 현대적이고 세련된 조형원리를 적용하여 설계하였다.
뿌리공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하여 경로효친사상을 함양시키고 한겨례의 자손임을 일깨우기 위하여 세계 최초로 성씨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운 충효의 산 교육장이다.
우리나라의 국조는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시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성은 삼국시대 왕족과 일부 귀족 중심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 초기부터 귀족은 물론 평민도 성과 본관을 쓰게 되었다.
성은 조선조 세종때 세종실록 지리지에 265성 영조 때 도곡 총설에 298성 1930년 국세조사결과 250성이던 것이 2015년 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5,582성 36,744본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특이하여 성과 본관은 가문을 나타내고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로 이루어져 있어 성명으로 개인의 구별은 물론 가문계대까지 알 수 있다. 이곳 뿌리공원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숭조위선의 정신으로 화목과 우의를 돈독히 하고 충효의 실천으로 한민족의 얼을 자손만대에 길이 빛내야 할 것이다.
배문의 유래 등을 설명하며 뿌리 공원내의 배씨상징탑인 삼한갑족의 혼을 참배하고 숭조정신을 다졌다.
뿌리공원에 설치한 배씨상징 조형물
배씨 유래를 읽고 있는 후손들
경주배씨 분성군 후손 유당공파종회 종친회(회장 榮珉)회원들
뿌리공원에서 기념 촬영
삼조원훈 조상의 뿌리를 다시 짚어보는 현장체험 학습의
뿌리공원 (왼쪽부터 파랑색 유니폼 총무와회장)
총무님의 말를 숭조정신으로 열심히 경청하며 문중의 발전과 화합을 다짐하는 종회원들
족보 박물관 입구
족보 박물관
종회원들 대전 뿌리공원으로 인솔 하는 버스안 회장님
종회원들 버스 안에서 종친간의 화합을 다지고 힘을 모으자는 미소
관광버스 2대를 대절하여 삼한갑족 종친가족을 모시고 뿌리공원과 독립기념관 순례참배로 이어졌다.
배문의 며누리들
배문중 딸들 점심식사
배문의 딸들도 문중의 화합과 친목을 다진 점심식사
여성 종친들 뿌리공원 견학 동참 하고 점심식사
종회원들 화합과친목을 다진 뿌리공원에서 점심식사
문중 최고령이신 언기님도 뿌리공원 견학 동참
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숭조돈목 정신 다진 뿌리공원 견학후 점심식사
여성 종친들 뿌리공원 견학후 화합과 친목을 다지는 저녁식사
명칭을 통일하게 씁시다 ~ !!
대종회 : 慶州裵氏 大宗會
파종회 : 慶州裵氏 盆城 派宗會
소파종회 : 慶州裵氏 達城 直提學公 派宗會
지역종친회 : 慶州裵氏 0 0 宗親會
나의 뿌리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효를 다하고 싶어도그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영원토록 내 곁에 있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일과 사랑을 미루더라도 절대 효만큼은 내일로 미뤄서는 안됩니다.
효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가급적이면 멀리 떠나지 않고 가까이서 대화하고 즐겁게 웃고 부득이하게 멀리 떠나야 할 때는 반드시 머무는 곳을 알려 드리면 됩니다.
효는 부모님께 무언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차갑습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안부 전화 올려야겠습니다.
-김현태님의 <행복을 전하는 우체통>중에서 -